야만의 제국 - 쓰러진 동료들

2001.06.01 12:39




게브렉은 무릎을 꿇고 피투성이가 된 오크의 몸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지 오래된 듯 오크의 몸은 이미 차디차게 식어 있었다. 게브렉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멍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스물도 넘는 동료들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고, 야영지 곳곳은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쓰러진 오크 중 일부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긴 창처럼 생긴 무기를 하릴없이 붙들고 있었다. 오크의 텐트나 야영지 불에는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게브렉과 함께 대낮에 사냥을 갔던 무리들이 야영지를 비웠던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었다. 게브렉은 주저앉은 채로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렇게 많은 오크들을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죽일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뒤에서 사냥을 떠났던 오크들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게브렉은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자신이 오크 무리들을 이끌어야 한다. 게브렉은 낮고 힘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냥팀이 야영지 주위로 흩어져 경계를 서기 시작하자, 게브렉은 긴 한숨을 쉬었다. 오크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언제나 지도자의 명령을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게브렉은 여전히 불안했다. 좀더 나이가 들고 현명한 지도자의 도움이 없이 오크 무리를 이끌기에는 게브렉이 너무 어리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은 바로 며칠 전이었다. 게다가 진짜 마술사로 인정을 받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세월이 지나야할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게브렉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었다. 이제 게브렉은 마술사가 되어, 자신의 무리를 스스로 이끌어야만 했다. 무리라고 해야 남은 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날이 가면 갈수록 아직 채 성숙하지 못한 오크들이 마술사나 전사로 임명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었다. 오크들이 이제 어린이들마저 활용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다급해진 것일까? 어린이들이 무기를 들고 싸움에 나서야할 정도로 많은 오크들이 목숨을 잃어버린 것일까? 게브렉은 마술사들이 전사들의 투구에 마술의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전에는 단 한번도 마술사가 전사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마술의 힘을 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전사들이 마술사들에게 마술의 힘을 요청한 경우도 지금껏 없었다. 마술사와 전사들은 모두 자존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마술사는 마술의 힘, 전사들은 육체의 힘만으로 모든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게브렉이 이끌게 된 무리의 절반 정도는 전사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심지어는 고향의 기지를 떠나기에도 나이가 어린 놈들이었다. 전투에 겁을 먹을 정도로 겁이 많은 자들은 전사가 될 수 없다. 최근에 새로 임명된 전사들처럼 전투에서 겁을 먹고 달아나는 현상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오크 군주들마저 자존심을 버리고 마술의 힘이 깃든 투구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야영지에 남아있던 오크 군주들 대다수가 그 투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마저 모두 죽었다. 더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을 죽인 자들은, 투구를 쓰고 있는 오크 군주들마저 별 문제없이 해치워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게브렉은 야영지를 돌아다니며, 다른 오크들이 죽어간 동료들의 시체를 건사하고 쓸만한 물건이 없나 찾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는 동료들의 시체로 인해 살아남은 오크들이 더욱 겁을 먹지는 않기를 기원했다. 정리가 끝나자 야영지 불 주변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잔뜩 쌓였다. 게브렉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거느린 어린 전사들은 투구가 있거나 없거나, 오크 군주를 죽인 자들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첫번째 원정의 성공을 아무리 간절히 바라더라도, 이 취약하고 경험이 부족한 오크 무리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한 첫번째 공격을 성공리에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린 오크 하나가 게브렉의 뒤로 다가와 그르렁거렸다. 어린 오크의 손에는 오크의 얼굴 가죽처럼 보이는 것이 들려있었다. 뒤를 돌아본 게브렉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사한 오크들 중 얼굴 가죽이 벗겨진 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망설이며 가죽을 받아든 게브렉은 놀라서 오크 얼굴 가죽을 떨어뜨릴 뻔 하였다. 이것은 진짜 오크 얼굴 가죽이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엔 마술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마술의 힘이 깃든 가짜 얼굴 가죽… 오크라면 이런 물건을 절대로 만들지 않을 것이었다.


게브렉은 다시 한 번 야영지를 돌아보았다. 최상의 전사들은 모두 다 죽었다. 그리고 제대로 싸움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마술의 힘을 가진 가짜 오크 얼굴 가죽의 짓이 틀림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이다. 게브렉은 공포가 스물스물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오크들을 죽이고 있었다. 오크에겐 이제 시간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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